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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영성과 유대적 영성, 성서신학적 토론: 시무언(是無言) 이용도의 생애와 신앙을 중심으로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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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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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대일. "동양적 영성과 유대적 영성, 성서신학적 토론: 시무언(是無言) 이용도의 생애와 신앙을 중심으로 = A Study of Rev. Yong-Do Lee's Spirituality from the Perspective of Biblical Theology." 신학과세계. no. 43 (2001): 17-48.


발행기관 : 감리교신학대학

연구분야 : 종교학/ 신학

왕대일(Tai-Il Wang): 감리교신학대학교 전 구약학 교수.


Table of Contents

1. 이용도 이해의 세 축 - 증언, 고발, 변증
2. 이용도 연구의 새로운 지평 - 이용도 이해에서 이용도 해석으로
3. 이용도 해석의 변수들
4. 이용도의 “동양적 영성”에 대한 성서신학적 조명
5. 이용도의 “동양적 영성”에 대한 성서신학적 평가
6. “이용도적 영성”과 “사랑의 포용주의” - 그 명암(明暗)의 정리


논문속에서

p. 31
이용도적 영성: 종말론적, 실천적, 웨슬리적 영성

p. 32
구약의 영성: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인간의 자기 실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기 실현 속에 작용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된다.
구약의 히브리적/유대적 사고에서 영성은? :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고자 하는 삶 (Life in the presence of God)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나 태도

p. 33
구약적 영성에서 인간의 삶을 이해할 때 유대주의에는 수없이 다양한 영성적 실존 방식이 있었다. 그 모든 다양한 영성적 실존 방식에서 영성의 뿌리는 토라~

p.35
유대적 영성이 존재하던 방식
1)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자 사람이 환상 등의 방식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방식. 예, 유대 묵시문학의 영성.
2) 사람의 마음 속에 ‘내려와서’ ‘거주하시는 (tabernacling)’ 주님과 더불어 지내고자 ‘주님을 위한 식탁을 마련하는’ 방식. 예, 이용도의 영성: 신구약성서가 증언하는 ‘우리 가운데 들어와 거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 이런 삶을 1920-30년대의 한국이라는 동양의 거친 토양 위에서 직접 체험하고자 했다. 이용도는 이런 자신의 신앙을 ‘동양적인’ 것으로 거침없이 규정해 놓았다. 동양에서 서양적 기독교는 실패. 서양의 미완성품인 기독교에서는 만족을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심령 방면 신비 방면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겠다.


p.36
왕대일이 이용도의 영성을 ‘동양적 영성’으로 부르는 이유:
이용도가 동양에서 (동양적인 눈으로, 동양적인 마음으로, 동양적인 실천으로) 예수와 만났기 때문에. 이용도는 동양에서 하나님을 이야기했고, 동양의 토양에서 자기 정체성을 파악했으며, 동양의 한 무대에서 신앙의 실체를 체험했기에.

pp.38 -40
유대 히브리적 영성 = 유대 히브리적인 존재 방식
이용도의 영성 = 이용도의 존재의 방식 (이용도의 전기나 평전을 통해 이용도의 존재 방식을 보고 이용도의 영성을 확인할 수 있음)

이용도적 영성
1) p. 38 이용도는 자신의 영성을 성서라는 깊은 샘에서부터 퍼 올렸다. p. 39 이용도는 어느 누구보다도 성서의 말씀을 자신의 삶과 한국 교회 속에 ‘육화’시키고자 애를 썼던 사람이다. 그는 성서를 이해하거나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한 책 (성서)의 사람이었다. p. 40 이용도의 영성은 ‘예수 유일주의’ 그는 예수와의 ‘하나 됨’을 갈구. 주님을 직접 체험하는 신앙을 갈구.
2) 이용도의 영성이 형성된 정황 (matrix)은 한국. 이용도가 예수를 체험한 자리는 한국 문화라는 토양. 동양적 토양. 이용도는 기독교인이면서 참으로 한국인이었다.
3) p. 41 이용도의 영성을 구체적으로 태동시킨 ‘삶의 자리’는 1920-30년 한국 민족이 겪어야만 되었던 식민지살이의 한이었다. 왕대일은 이용도가 당시 암울한 사회 구조 속에서 참 교회 공동체의 자유를 향한 몸부림을 자기 신앙의 내면화에서 찾았다고 본다. p. 42 이용도 개인이 폐병 3기로 진단받고 폐가 말라 죽어가는 고통 속에 살아야만 되었던 실존적 정황도 한 몫을 하였다. 날마다 생영있게 살아가는 종말론적 신앙이야말로 이용도가 궁극적으로 관심하였던 것이다.

나의 본업은 오직 신앙 그것이 (오직 성령님을 쫓는 것만이) 있을 따름이올시다. 신앙을 위하여 전도하고 ‘신앙은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도를 위하여 신앙하는 것이 아니올시다. 나의 전체의 일은 다만 신앙을 위함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성령을 좇아 살기 위함) 이요 신앙을 인함이올시다. (성령을 좇아 살다보니 일도 하고, 전도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런 것입니다)

4) 이용도적 영성에는 그가 받은 신학교육 (서구신학)의 영향이 스며 있을 수도 있다. p. 43 이용도의 사유구조가 한국적이면서도, 그가 동서양 종교를 유형론적으로 구별할 때 도양을 정적, 영적, 내세적, 신비적인 것으로, 서양을 그 반대로 보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이용도가 받은 신학 수업의 결과일 수도 있다.
5) 이용도의 영성은 웨슬리적 성화의 실천이었다. 행함의 신앙.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예수가 졌던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까지 예수처럼 살아야 될 것을 소망했다는 점에서 그는 행함의 신앙을 강조하였다. 신앙이 곧 생명이었다. p. 44 철저히 예수를 따르고, 예수를 닮고, 예수처럼 살고자 했다. 예수처럼 살 수 있게 하는 신앙이란 성령의 힘에서 가능하다고 피력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사랑의 실천에서 완성되는 그리스도인의 성화.


pp. 47-48
‘이용도적 사랑의 영성’이 건너뛰지 못한 한계: 이용도의 무한포용의 사랑이 열광적인 종교현상마저 분별없이 포용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피도수 선교사는 이용도가 말년에 인도했던 부흥회에서 신내림, 무아지경, 영매술 등이 나타나는 현상이 잦았다고 증언하면서도 이용도의 말년을 다음과 같이 적극 변호한다.

….그는 겨울 바람처럼 세차게 몰아치는 모든 비난과 갈등을 뒤로 두고 따뜻함과 환대와 연대감 그리고 기도가 있는 곳에 닻을 내렸다… (1933년 감리교 연회가 이용도에게 목회사역을 중단할 것을 공식화했을 때 이용도를 중심으로 모인 친구들은 예수교회를 설립하고 이용도를 초대 선도감으로 선출했다)

사람들은 이용도의 신학적 미숙함을 그 원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용도의 사랑의 포용주의가 너무 무한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KEYWORDS: 동양적 영성, 유대적 영성, 이용도, Rev. Yong-Do Lee's Spirit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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